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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약자의 살을 깎는가?
작성자 박○○ 작성일 2008-10-11 조회수 202
왜 약자의 살을 깎는가?

1. 들어가며
나는 충남에 산다. 그리고 장애인을 위해 일한다. 나의 역량이 부족하여 내가 장애인에게 실효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지 아직 알기 어렵지만 그래도 나는 장애인을 위해서 일한다. 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인의 가치와 만인의 가치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인간, 인간의 가치가 낙엽이나 티끌처럽 하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하고 또 말하는 인간이 적기를 바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바램은 현실과 거리가 먼 모양이다. 세상의 어떤 누군가는 장애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대단치 않은 일이고,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는 배려가 아닌 무시의 대상이고, 따라서 필요할 때 복지예산은 언제든지 깎아서 쓸 수 있는 편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충청남도의 2009년 복지예산은 재개발 판잣집들마냥 뭉텅 잘려나갔나 보다.

2. 샤일록을 닮아간다
샤일록을 아는가? 악덕고리업자. 자신이 미워하는 인간에게 돈을 빌려주고 빛을 갚지 못하자 빛 대신 살점을 요구했던 후안무치의 극단을 보여주는 악한. 세상에 이런 인간이 소설이나 희곡의 악역 캐릭터로만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너무 잘 안다. 이보다 악하고 냉혹한 인간들이 우리의 주변에는 차고 넘쳐난다. 약자를 위해 마련된 예산마저 도려내는 판에 무엇은 못하겠는가. 샤일록이 심장 언저리의 살을 달라고 한 일과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의 살을 몇 근씩 도려내면 사람은 죽는다. 마찬가지다. 장애인 예산을 도려내면 장애인 복지는 죽는다. 몸에서 각기 자리를 잡고 붙어있는 살을 억지로 도려내는데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는가. 하면 살아있을 수 없게 되는데 그 일을 하겠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죽이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약자를. 약자에게 배정된 예산이라는 살을 도려내어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지는 모르겠으되 약자의 권리만큼 소중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아니, 무엇을 가져와도 인간의 권리에 칼을 들이대 도려내자고 뻔뻔스레 말할 만큼 대단한 것은 존재할 수 없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하겠단다. 그래서 샤일록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3. 무지와 무심의 산물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 이런 유행어가 있다. ‘모르면 말을 하지 마세요.’ 맞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유행어지만 그래도 촌철살인의 묘가 살아있는 멋지고 또 맞는 말이다. 그렇다. 사람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도 나서서 뭔가 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 알고 난 다음에 덤벼서 뭔가 해야 한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또 뭔가를 하려고 했다면 그 때부터 반드시 오류가 발생한다. 당연한 일이다. 모르는 일을 했는데 제대로 될 턱이 없다. 타지에 가면 어쩔 수 없이 길을 헤매게 되는 것처럼 이상한 일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오류가 생긴다. 따라서 타지에 가지 전에는 지도를 보고 사전자료를 찾아보든가 아니면 조심스럽게 표지판을 찾아보던가 그것도 아니면 현지인을 잡고 길을 물어보는 것이 온당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론적 자료도, 현장 실무자들의 소리도 무시하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오류를 범해버린다. 오류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다. 오류가 오류인지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 까닭은 뻔하고 뻔하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복지 따위가 어떻게 되던 말던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이다. 목적지조차 없이 마치 그냥 스쳐 지나가는 길손처럼 타지에 와 있으니 길을 물어 볼 필요도 표지판을 볼 필요도 지도 같은 것을 볼 필요는 더더욱 없었던 것이다. 무지와 무심이 만나면 이렇게 된다. 하지만 지역의 일을 하고 그것도 낮고 골진 곳을 메우는 복지행정을 한다는 사람이, 지역의 시민들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취할 자세는 아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무지하고 무심하다면 유행어 말마따나 ‘말아야’ 한다. 그 자리가 지금 당신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4.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없는가?
위와 같이 분명히 말했다. 중증장애인의 예산을 깎아버린 것은 샤일록이나 할 법한 일이고 무지와 무심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추악한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러함에도 이 일이 추진된다면 동양에서 제일 큰 비난인 ‘수치를 모른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수치심이 없으니 금수와 같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배가 침몰하게 된다면 노약자들부터 구명정에 태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위기에 처한다고 약한 자의 살을 뜯어 먹으면 그것이 어찌 사람인가. 모르는 일을 말하고 관심도 없는 일을 마구 되는대로 해버린다면 그것이 어찌 지역 시민의 책임 있는 대표이고 행정가인가. 당신들이 시민의 대표이고, 시민의 행정을 맡고 있다면 그 이름과 위치에 맞는 일을 하라!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내려와라! 이런 일을 꾸미고도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기를 바란다면 두려움이 없는 것일지니 시민이 직접 두려움을 알게 할 뿐이다. 부끄러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자가 무슨 일을 하겠으며 또 일을 한다 한들 그것이 제대로 된 일이겠는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두려움도 모르고 있다가는 끝내 자리를 잃게 되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 화를 입고 싶지 않다면,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라.

5. 끝맺으며
시민들이, 장애인들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을 바라겠는가. 그저 당연하고 또 당연한, 순리에 지극히 맞는 것을 바랄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골진 곳을 메워야 하고 다친 곳을 아물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순리다. 약자의 살을 깎고 상처를 헤집는 것이 어찌 당연할 수 있겠는가. 당연한 것이 당연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고 순리에 역행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기 마련이다. 그 망하는 모습이야 제각기 다르겠지만 망하는 것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사는 집 문턱, 무릎 높이조차 되지 않는 문턱에 걸려서 갇혀 사는 사람도 있고 말도 안 되는 패륜의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 당한 이도 있다. 이런 수없이 많은 장애인 현장의 문제에 무지하고 무심하다면 복지를 그 입으로 말하지 말라. 장애인 복지 예산을, 그것도 중증장애인의 복지 예산을 손대서 무엇을 어쩌겠단 것인가.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것을 그래도 두는 것이 더 부끄럽고 참람된 일이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고쳐라. 장애인 복지 예산. 원상태로 복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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